티스토리 뷰
나는 루쉰을 잘 모른다. 루쉰의 책 중에 읽어본 건 <아Q정전>이 유일한데, 그나마도 중고등학교 때 읽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루쉰, 길 없는 대지>를 읽게 된 건, 저자 중 한 사람인 고전평론가 고미숙이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중국을 알려면 루쉰을 읽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기 때문이다. <아Q정전>이라는 괴작을 쓴 작가가 정말 그렇게 대단한 인물일까. 반쯤 의심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이 책을 직접 읽어보니 과연 루쉰은 대단한 인물이었다. 일단 그 시대 사람으로는 드물게 이동거리가 상당하다. 루쉰은 1881년 중국 저장성 사오싱에서 태어나 난징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1902년에는 국비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 도쿄와 센다이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귀국한 후에는 중국의 베이징, 샤먼, 광저우, 상하이 등을 오가며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했다. 이 책은 고미숙을 비롯해 공부공동체의 학인(學人)으로 인연을 맺은 여섯 명의 필자가 루쉰이 직접 살았던 장소들을 방문해 각 시기별 루쉰의 삶과 사상의 흔적을 좇은 일종의 기행문의 형식을 띈다. 루쉰이 한 곳에 머물러 살지 않은 덕분이다.일본 유학은 루쉰의 생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일본에 도착한 루쉰은 변발부터 잘랐는데, 구한말 조선인들이 단발령에 반발한 것처럼 당시 중국인들도 변발을 자르는 것을 거부하는 풍조가 있었기 때문에 루쉰이 변발을 자르자 중국인 유학생 사회 안에서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자 루쉰은 변발이 만주족의 풍속이라는 이유로 거부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중국 문화의 하나로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느냐며 중국인의 이중성에 치를 떨었다.루쉰의 수난은 센다이 의학 전문학교(현재 도호쿠 의과 대학) 시절에도 계속되었다. 루쉰은 이 학교에서 후지노 곤쿠로라는 평생의 은사를 만났다. 후지노는 중국인 유학생인 루쉰이 수업 내용을 잘 따라오는지 확인하기 위해 루쉰의 노트를 확인하고 빠진 내용을 보충하고 틀린 문법을 바로잡아주곤 했다. 그러자 일본 학생들은 후지노 선생이 루쉰에게 미리 시험문제를 찍어주었다 라는 루머를 퍼뜨렸고, 루쉰은 1등도 아니고 고작 68등인 나를 시기하느냐 며 학교를 그만뒀다. 당시 일본에는 중국인 유학생뿐 아니라 조선인 유학생도 있었다. 그들은 어떤 핍박을 당했을까. 루쉰보다 더한 일을 겪지 않았을까.문예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문예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으로 잠들어 있는 사람들의 정신에 파문을 일으킬 수 있단 말인가. 루쉰은 글을 쓰기로 결심한다. 단, 그는 자신이 믿지 않는 것을 쓰지 않는다. 동시에 자신이 쓰는 글을 믿지 않는다. 루쉰의 글이 한없이 단순명쾌한 듯하면서도 버거운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다. 지독한 자기부정과 자기환멸. 그러나 니체 말대로, 대체 자기를 환멸해 본 적 없는 인간이 어떻게 자기를 긍정할 수 있단 말인가. (225~6쪽)의학 공부를 그만두고 귀국한 루쉰은 이후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외국 도서를 번역하면서 생계를 잇다가, 1918년 <광인일기>를 발표하면서 작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루쉰에게 글쓰기는 단순한 창작 활동이 아니라 문예 혁명 이었다. 루쉰에게 글은 잠들어 있는 사람들의 정신에 파문을 일으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어둡고 막막한 현실 때문에 절망한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기 위한 도구였다. 그러나 루쉰은 무지몽매한 대중을 깨우치기 위한 글쓰기, 이른바 계몽적 글쓰기는 지양했다. 이것이 루쉰이 대단한 작가로 손꼽히는 점이다.루쉰은 무너뜨리고 부수고 없애고 바로 세워야 할 대상을 바깥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찾았다. 루쉰은 자기 자신의 우매한 생각이나 언행의 불일치, 과거의 습속을 생각 없이 따라 하거나 게으르게 사는 태도 등을 스스로 고백하고 반성하는 글쓰기를 즐겨 했다. 그래서 루쉰의 글은 무섭다. 잽을 날리는 데 남을 때리지 않고 자기 얼굴을 때리니 무서울 수밖에. 그러나 전통이든 습속이든 사회이든 문명이든 심지어는 자기 자신이든 간에, 뭐든 무너뜨리고 부수고 없애야 다시 만들 수 있고 바로 세울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 루쉰은 과연 대단한 작가다.문명은 부유함도 대중정치도 아니다. 혁명은 부와 권력을 쟁취하는 권력투쟁이 아니다. 사람이 서는 것[立人], 그것이야말로 문명이고 혁명이다! (231쪽)혁명은 부와 권력을 쟁취하는 권력투쟁이 아니라 "사람이 서는 것[立人]"이라는 문장이 특히 마음에 와 닿았다. 혁명을 통해 기득권층이 독차지하고 있는 부와 권력이 원래 돌아가야 할 곳으로 돌아가고 대중에게 분배되면 좋겠지만, 혁명의 과실(果實)은 그것만이 아니다. 자신의 뜻과 생각을 확립하고, 같은 뜻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연대하고, 연대를 통해 원하는 세상의 모습을 스스로 만드는 것. 그것이 혁명의 진정한 목표이고 성과다.그러나 이제까지 한국 현대사에서 대부분의 혁명은 권력투쟁에 그쳤다. 부디 2016년 촛불 혁명의 결과는 달랐으면 좋겠다. 적폐 세력의 일부인 판검사들, 소신 없이 산 공무원들, 억압받은 언론인들 모두 돈(특히 삼성)과 권력에 기대지 말고 자기 두 발로 섰으면 좋겠다. 물론 나도(나는 판검사도 공무원도 언론인도 아니고 기댈 돈도 권력도 없지만 아무튼...).사람이 사람을 먹는 기괴한 이야기나 쓸 줄 아는 작가인 줄 알았더니 이렇게 대단한 글을 많이 남겼을 줄이야. 루쉰의 저작이라고는 <아Q정전>밖에 읽어보지 못한 까닭에 이 책의 내용을 모두 소화하지는 못했지만, 이 책을 계기로 앞으로 루쉰의 저작을 많이 만나봐야겠다. 고미숙의 말대로 중국을 알려면 루쉰을 읽고 알아야 하는지 판단하는 건 나중으로 미루기로.
공부공동체인 남산의 ‘감이당’과 ‘남산강학원’, 혜화동의 ‘규문’ 그리고 경기도 용인의 ‘문탁네트워크’에 속한 필자들이 루쉰의 여정을 밟아 가는 새로운 평전을 써보자 는 프로젝트에 의기투합하여 탄생하게 된 새로운 형식의 평전.
각자의 공부 네트워크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루쉰을 오랫동안 공부해온, 고전평론가 고미숙을 비롯한 여섯 명의 필자들은 루쉰이 직접 살았던 장소들(태어난 곳인 사오싱부터 시작해 난징, 일본의 도쿄와 센다이를 거쳐 다시 중국의 베이징, 샤먼, 광저우, 상하이에 이르는)을 방문해 각 시기별 루쉰의 삶과 사상의 흔적을 좇았다. 루쉰이 머물렀던 곳, 공부했던 곳, 일하던 장소, 글을 쓰던 곳 등등을 누비며 그 시기 그 장소에서 루쉰이 맞닥뜨렸던 삶과 고민, 그리고 그의 글쓰기를 불러온 이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는 루쉰에 대한 특별한 평전을 가지게 되었다.
1부에서는 여행의 여정과 그 여정지에서 만난 루쉰의 삶과 사상을, 2부에서는 루쉰의 주요 저작들을 일별하여 루쉰의 ‘글쓰기’에 대한 새로운 서평들을 담아낸 이 책은, 루쉰의 생애와 글쓰기를 가장 입체적으로 보여 주는 새로운 평전 쓰기인 동시에 재미와 의미를 모두 잡은 ‘루쉰 입문서’이며, 독자들이 자신만의 ‘루쉰-로드’ 만들기에 나설 것을 청하는 초대장이다.
머리말
지도와 함께 보는 루쉰 연대기
1부. 루쉰 온 더 로드
프롤로그. 도주의 달인 루쉰 (고미숙)
‘희망’은 창녀다! /역사는 ‘식인’, 민중은 ‘또라이’ /혁명, 지옥의 판타지 /먼지처럼 흩어지기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쉰 온 더 로드 /영원한 도망자, 루쉰
1장. 샤오싱~난징 시절 : 몰락과 도주 (고미숙)
고전과 첨단의 공존, 항저우 /루쉰과 기차 /루쉰과 마오쩌둥 / 아침 꽃 저녁에 줍다 와 루쉰과 저우쭤런 /몰락의 연대기 / 산해경 과 한의학 / 천연론 과 신세계 /에필로그 ― 뒷담화 하나
2장. 도쿄 시절 : 구경꾼으로 머물 것인가, 혁명적으로 살 것인가 (채운)
몰락하는 자에게 길이 있나니 /습속의 저주 ― 변발이야기 /‘센다이’라는 입구 혹은 출구 /내 기꺼이 악마가 되겠노라 /그리고, 루쉰과 니체
3장. 도쿄~센다이 시절 :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한다 (채운)
루쉰, 도쿄에서 보낸 한 철 /스승을 만난다는 것 : 센다이, 루쉰, 그리고 후지노 선생 /소세키의 ‘자기본위’ vs 루쉰의 ‘자기해부’ /다중(多重)의 근대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루쉰을 읽는다는 것
4장. 베이징 시절·1 : ‘루쉰’(魯迅)의 탄생 ― 위대한 몰락 혹은 계몽의 혁명 (문성환)
intro_북경, 연경, 베이징 /문학이란 ‘무엇’인가 /루쉰의 적막 / 철방으로부터의 외침 ― 루쉰의 탄생 /위대한 몰락, 계몽의 혁명 /outro_길 위에서
5장. 베이징 시절·2 : ‘고독한 전사’의 끈질긴 싸움 (길진숙)
두 차례의 베이징 여행 /루쉰과 항저우의 뇌봉탑 /베이징, 적막한 전장/동생과의 결별, 루쉰의 방황 /방황하는 지식인들 /무엇을 할 것인가? : 생존하라, 생계를 해결하라, 전진하라! /2016년 8월의 베이징여자사범대학 또는 루쉰중학교
6장. 베이징~샤먼 시절 : 아름답지 않은 삶을 쓰다 (신근영)
민국 이래 가장 어두운 날, 쓰다 /부드러운 칼을 든 요괴들 /잡문, 그리고 길 위의 전사 /‘호랑이꼬리’를 떠나다 /죽은 불이 깨어나다 /천당에서 삶으로
7장. 광저우~상하이 시절 : 혁명은 어디에 있을까 (이희경)
1926년, 지나가고 있는 중 /혁명이란 무엇인가?/붉은 도시 광저우는 붉지 않다 /문화위초(文化圍剿) ― 혁명문학논쟁 /‘루쉰’이라는 어떤 삶 /나는 루쉰을 만났을까?
에필로그. 아무도 용서하지 않는 자의 죽음 (고미숙)
상하이, 루쉰 로드의 종점 /죽기 일 년 전(1935년) ― Back to the future! / 에로스 ― 창조의 유희 /복수는 운명이다! /혁명 ― 모두에게 모든 것을, 우리에겐 아무것도! / 단 한 명도 용서하지 않겠다! /죽기 열흘 전 / 나는 죽음을 열망한다!
2부. 라이팅 온 더 로드
루쉰 저작 연대기
1. 계몽에 반反하는 계몽 : 루쉰의 무덤 (채운)
앞? 앞쪽은, 무덤이오 /문예, 저항의 소리 /계몽에 반하는 계몽
2. 차가운 공기를 가르는 뜨거운 외침 : 루쉰의 열풍 (채운)
열풍 과 외침 , 잡문과 소설 사이 /아들과 아버지 : 중간물로서의 존재 / ‘국수’(國粹)라는 사상적 질병과 ‘예외적 개인’의 도래
3. 적막 한가운데서 소설을 외치다 : 루쉰의 외침 (문성환)
외침은 읽는 게 아니라 들어야 한다 /광인과 철방 : 내 안에 너 있다 /‘아Q와 혁명’에서 ‘아Q의 혁명’으로 /작은 사건 : 희망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라지만
4. 생활의 반란, 습속의 배반 : 루쉰의 방황 (길진숙)
이념화된 루쉰을 넘어! /문제는 생활과 습속이다! /지금도 틀리고 그때도 틀리다! /해부의 달인, 루쉰
5. 무(無)를 통해 생(生)에 이르다 : 루쉰의 들풀 (채운)
먼지바람 속에서 /쓸 수 없다 그러므로 쓴다 /무지(無地), 생(生)의 긍정을 위한 대지 /함께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6. 눈앞을 가리는 허위를 벗겨내다 : 루쉰의 화개집 , 화개집속편 (신근영)
화개운을 만나다 /화개의 속임수 /적의 화살로 적을 쏘다 /대의명분 뒤에 숨긴 마음 /꽃이 없는 장미
7. 도망자=루쉰이 ‘옛일’을 대하는 특별한 품격 : 루쉰의 아침 꽃 저녁에 줍다 (문성환)
1926년, 베이징, 샤먼 /24효도 그림 : 내가 이랬다구? /아버지의 병환 :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아침 꽃을 저녁에 줍는 이유는
8. 그러할 뿐이다 : 루쉰의 이이집 (이희경)
1927년, 변곡점 /대의(大義)는 딱 질색이다 /문학은 무력하다 /적, 깃발 그리고 에워싸는 자
9. 혁명문학논쟁을 중계한다 : 루쉰의 삼한집 (이희경)
상하이 ― 심란한 출발 /혁명문학 ― 애매하고 모호하다 /논쟁 ― 단칼에 피를 보다 /잡문 ― 하찮은 것의 정치학
10. 옛 이야기의 복원과 생성 : 루쉰의 중국소설사략 (길진숙)
흥미진진한 중국소설사략 /루쉰은 왜 소설을 정리했을까? /루쉰이 공감한 소설 /중국인이 중국 작품을 말하라
11. 루쉰의 ‘고전사용설명서’―‘거룩한’ 신화가 ‘비루한’ 일상을 만나면? : 루쉰의 새로 쓴 옛날이야기 (고미숙)
고전이라는 ‘참호’ ― 도피가 아닌 도주! /‘시간여행’의 미학 ― 반전과 해체 / 생명과 일상 ― 급진적인, 너무나 급진적인!
- Total
- Today
- Yesterday
- 만화 토지 11
- 헬로카봇 따라 그리고 스티커 색칠놀이
- [대여] H팩터의 심리학
- 마음의 수수밭
- 자기주도 독서록 쓰기
- 최고다! 섬 여행
- 문제 해결의 길잡이 심화 수학 1학년
- 나는 왜 맨날 당하고 사는 걸까
- 이집트 미라의 저주
- 해저 2만리 1권 - 쥘 베른 걸작선 2
- 차의 지구사
- 라라랜드 영화음악 (La La Land OST by Justin Hurwitz 저스틴 허위츠)
- 2008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 길 없는 대지
- 라인 살리는 저칼로리 4주 다이어트 식단
- 탈북 그 후
- 신과 함께 신화편 세트
- 비즈니스에 답하다
- 창비 중학교 국어 1 자습서 (2017년용)
- 2012년도 명강사들
- EBS FINAL 실전모의고사 사회탐구영역 한국지리 (2017년)
- 뜯어 먹는 중학 영숙어 1000
- 꼬마 바이킹 비케 1
- 외우지 말고 이해하라
- 위저드 스톤 6
- 어떤 코리안
- 중학 패턴 수학 3-2 (2019년용)
- 낭만의 통기타 초급
- 깜깜 마녀는 안전을 너무 몰라
-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