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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독서는 3독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먼저 텍스트를 읽고, 저자를 읽고, 자신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린비에서 내놓은 고전 리라이팅(re-writing) 시리즈의 하나이다. 고전의 텍스트를 읽고 저자를 살펴보되 정통한 가이드를 통해 현대적 맥락에서 재해석해 보자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독자가 자신까지 읽는 독서 3독을 완성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최고의 작품이다. <열하일기>는 청나라 황제의 70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사절단의 일원으로 열하를 다녀오면서 겪은 일을 정리한 기행문이다. 하지만 보고 들은 것만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적은 단순한 기행문이 아니다. 문장가, 사상가, 예술가, 실학자,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의 박지원의 삶과 고민과 열정과 지식이 낯선 땅을 처음 밟으면서 생기는 호기심과 멋지게 버무려져 있는 살아 있는 문학작품이다. 조선시대 양반이라는 신분상 제약과 유교적 가치관을 뛰어넘지 않고서는 결코 쓰여질 수 없는 대작이라고 하겠다.고미숙의 <열하일기> 읽기는 독서 3독을 가능하게 하는 방식으로 정리되어 있다. 1장과 2장에서는 박지원의 삶과 함께 그의 문체가 당시 사회에 끼친 영향을 살핀다. 고미숙은 연암이 넘치는 활력과 카리스마를 가진 태양인의 성품을 지녔다고 소개한다. 그러면서도 우울증을 지니기도 했다. 과거시험 보기를 거부하고 재야 선비로 살아가기로 결심하면서 시중에 떠도는 이야기를 글로서 정리하는 일을 하게 된다. 현재의 에세이류에 속하는 그의 문체는 당시 정조대왕을 비롯한 지도층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법, 1792년 정조는 이런 패관잡기는 물론 경전과 역사서의 수입을 금지하는 문체반정의 조치를 내린다. 이런 문체의 분위기를 주도한 사람으로 연암이 지목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저자는 3장에서 열하일기 텍스트를 본격적으로 분석한다. 고미숙은 연암이야말로 낯선 것과의 접속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동시에 떠남도 두려워하지 않는 유목민(nomad)이라고 정의한다. 그의 작품 속에는 친숙함과 낯섬이 끊임없는 변주하고, 침묵하고 있던 사물들이 잠에서 깨어 유머와 패러독스의 옷을 입은 채 우리에게 달려온다는 것이다. 압록강에서 열하까지 4개월간의 대장정을 묶은 책이지만 하나하나의 글은 시작도 따로 없고 끝도 따로 없는 천개의 고원 이라고 평가한다. 개개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독립성을 지닌 열린 구조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작품 속에 숨어있는 넘치는 유머, 열정의 패러독스는 4장에서 자세히 분석된다.<열하일기>를 소개하는 고미숙의 발랄한 문체는 열하일기 그 자체를 많이 닮았다. 사실 이 책은 고미숙 작가의 연암과 열하일기에 대한 짝사랑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듯하다. 노마드 성향을 지닌 노미숙 작가가 양반의 신분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음 가는대로 행동하며 사고의 변방을 자유분방하게 넘나드는 연암의 모습에 푹 빠진 것은 쉽게 이해가 된다. 그것이 연암과 그 시대에 대한 연구로 이어졌음은 자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노마디즘에 입각한 고미숙의 열하일기 읽기>라고 명명해도 좋을 것 같다.먼저 <열하일기>를 읽고 나서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비록 이 책에서도 원문의 많은 부문을 인용해 설명하고 있지만 역시 열하일기의 맛은 전문을 읽어 보는 데 있다. 나는 학창시절에 <호질>이나 <일야구도하기>와 같은 열하일기의 단편을 접할 기회는 있었다. 그러나 전문을 읽어보고 나서야 <열하일기>가 단순 기행문을 뛰어넘는 하나의 사상서이자 예술작품인 동시에 철학서이기도 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왜 열하일기가 조선말기까지 금서취급을 받았는지, 다시 멋진 고전문학의 백미로 되살아났는지를 마음 속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린비에서 내놓은 리-라이팅 시리즈는 눈에 띄는 기획물이다. 이 시리즈는 책을 깊이 있게 연구한(혹은 재미있게 읽은) 가이드를 내세워, 그의 삶과 경험을 통하여 원전을 바라보도록 만든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 속에서 텍스트를 읽고, 해체·분석하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디자인하여 간직한다. 이렇게되면 고전 읽기가 철저하게 현재적인 작업이 될 수 있다.
이 책은 시리즈 1번으로, 박지원의 열하일기 를 다시 읽고 재구성한 것이다. 저자 고미숙은 박지원에 대한 열렬한 애정과 자신만의 발랄하고 경쾌한 문체로 를 선보인다. 그녀의 문체는 그 자체로 유쾌하기 짝이 없지만, 열하일기 와 만나서 더욱 빛을 발한다. 한 시대의 사유체계에 대한 도전은 문체로 드러난다고 믿는 저자가, 고문(古文)에 반대하고 살아있는 생생한 문장을 추구하여 문체 반정의 원인이 되었던 박지원을 만났으니 얼마나 신이 나겠는가.
한편 이 책은 들뢰즈와 가타리의 노마디즘에 기대어 열하일기 를 읽는다. 저자는 연암이야말로 머묾과 떠남에 자유로왔던 유목민이었으며, 사물의 사이 에서 사유할 줄 알았던 경계인이었다고 본다. 열하일기 는 중심이 없고 시작도 끝도 없는 리좀 이며, 모든 장이 저마다 독립적인 세계를 가진 천의 고원이라고 선언한다. 또 탈주 와 재코드화 , 재배치 의 대가인 연암은 사물의 어느 한국면에 머물지 않는 강한 호기심과, 풍부한 유머, 그리고 통렬한 패러독스로 열하일기 를 채우고 있다.
이 책은 이라는 기획의 진가를 여지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다. 고전을 다시 쓴다 는 것은 무슨 뜻인가? 오늘을 사는 사람이, 오늘날의 코드로 텍스트에 접근하는 것이며, 마침내 그것을 자신의 삶의 일부로 만드는 것이다. 고미숙은 연암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훌륭한 프리즘으로 그것을 이루어냈다.
책 머리에
프롤로그 : 여행, 편력, 유목
1장 나는 너고 너는 나다
1. 젊은 날의 초상
2. 탈주, 우정, 도주
3. 우발적인 마주침, 열하
4. 그에게는 묘비명이 없다
2장 1792년, 대체 무슨 일이? - 열하일기 와 문체반정
1. 사건 스케치
2. 문체와 국가장치
3. 대체 소품문이 뭐길래!
4. 연암체
5. 열하일기 - 고원 혹은 리좀
3장 천의 고원을 가로지르는 유쾌한 노마드
1. 잠행자 혹은 외로운 늑대
2. 열하로 가는 먼 길
3. 천 개의 얼굴 천 개의 목소리
4장 범람하는 유머, 열정의 패러독스
1. 유머는 나의 생명!
2. 시선의 전복, 봉상스의 해체
3. 문명은 기왓조각과 똥거름에 있다
5장 내부에서 외부로, 외부에서 내부로!
1. 사이에서 사유하기
2. 세 개의 첨점 : 천하, 주자, 서양
3. 인간을 넘어, 주체를 넘어
보론 : 연암과 다산 - 중세 외부를 사유하는 두 가지 경로
열하일기 의 원목차
연암의 열하 여정도
열하일기 등장 인물 캐리커처
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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